시사인 인턴이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지하철 안에서 '심하게' 큰소리로
"감사합니다."
외친 것이 벌써 한 달 하고도 수일이 지났다.

처음 보는 인턴들과
낯설어 말도 많이 못하던 걸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정도가 아니라 '모순'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인턴들과 가까워졌다.

나이가 '시간의 속도'라는데.
지난 한 달은 20km가 아니라, 200km의
초고속 질주를 해 온 것 같다.

출근 첫 날부터 '인턴일기'를 쓰리라
생각했었는데....
누굴 탓하랴, 이 놈의 '귀차니즘'.

일기는 정말 '내 것'이니까
내가 느낀 인턴생활에 대해 조금씩 적어볼까 한다.

한 달동안 시사인에서 지내면서
편집국에서, 취재현장에서, 술자리에서
느낀 것들이 많았는데,
적지 못했다.
남은 한 달(정확히는 3주)동안은
인턴생활을 조금씩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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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NG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ey sis ! Long time no see !


    I was sure you got yr goal. Congratulations!:D
    I feel like waking up myself whenever I see U.
    "Aren't you exhausted?" I've been trying to ask you.
    You're always speeding on your life.
    How Lovely you are !!
    Your firmness, Your deligence... and yr desirable abilities ! kkk
    Keep pushing your way and thanks for letting me hit the road while I was almost going off. Wish your great luck ! C U soon :-)


    (Hopefully) Very nice Junior of yours kkk

    2008.08.07 11:09

월간 [샘터] 8월호. '선배, 밥 좀 사주세요'

국회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꾸다.

-국회의원 비서관 박형민씨-


매끈한 검은색 정장 차림, 이종격투기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 국회로 향하는 발걸음. 뭇 사람들은 이런 선배를 국회 경호원으로 자주 오인한다. 하지만, 땡! 박형민(29)선배가 일하는 곳은 국회지만 그는 경호원이 아닌 비서관이다. 비서관이라니! 범상치 않은 그의 외모와 취미는 늘 사람들에게 ‘왜 (혹은) 어떻게 비서관?!’이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학문정치가 현실정치에 적용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싶다는 로망은 공부할 때도 늘 있었어. 그 과정은 의미 있는 일인 동시에 나에게 또 다른 공부가 되니까 말이야. 대학 때 밴드활동을 하고 지금 이종격투기를 하니까 내 직업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건 비서관에 대한 편견 때문일 거야. 사실 취미와 직업은 아무 상관없잖아?!”


선배의 말대로 국회의원 비서관 하면 사람들은 보통 ‘얌전한 사무직’이나 ‘능구렁이가 다 된 얌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선배는 그런 이미지가 ‘불만’이라며 비서관은 겉에서 볼 때와 차이가 크다고 강조한다. 독립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조력해 정책과 법을 만드는 일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것이 선배의 설명이다. 또 그렇기에 단순히 기능직으로 일하기보다 “궁합이 맞는 국회의원”과 일할 때, 훨씬 의미 있고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선배가 말하는 현실(국회 안의)정치란, 철학이 맞는 사람들이 만나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작년 9월 국회에 들어온 선배지만, 짧은 기간 동안 선배는 일명 ‘국회의 3중고’를 모두 겪었다. 국정감사, 대선, 총선이 바로 그것. “선거는 정말 힘들었어.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그랬지. 국회의원은 입법기관(Assemblyman)인 동시에 정치인(party member)이니까, ‘권력 재생산’이 목적이 될 수밖에 없잖아. 나 역시 의원의 낙선과 동시에 실업하는 거니까, 집착하게 되고 그런 문제들이 또 회의적으로 다가왔거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회 본청 앞에서 박형민 선배.




대선, 총선이 ‘심리적 압박전’이었다면 국정감사는 ‘정보의 폭로전’이라고 선배는 말한다. ‘행정부의 감시’라는 국회기능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장(場)이자, 비서관들의 정부싸움이 가장 극렬하게 이뤄지는 기간이 바로 이 때인 것이다. 1년이 안 된 시간동안 세 가지 일을 모두 겪은 선배, 굉장한 경험 아닐까. “경험은 무슨, 일 년 사이에 몰라보게 늙었어.(웃음)”


그럼에도 이 일을 그만 두고 싶진 않단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는 쾌감은 이 일을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비서관의 생각이 이슈화되고 공론화지만 선배는 억울하기보단 다행이라고 한다. “혹자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지. 난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대표성을 갖게 되는 게 참 좋아. 그리고 그 생각이 국가시스템으로 작용하는 법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정말 기쁜 일 아니겠어? 뭐, 아직 내 생각이 입법화된 건 없지만.(웃음)”


선배는 인턴 공채로 국회에 들어와서 비서관으로 진급한 케이스다. 국회 비서관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대게 선배처럼 공채로 뽑히거나 국회의원의 당선 전부터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비서관이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어떤 방법을 거쳐 들어오게 되더라도 비서관이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선배는 말한다. 국회는 늘 국민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고 뉴스가 생산되는 곳이라 일하는 순간순간 순발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결해야 한다. 고민하고 대안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렇기에 비서관에겐 늘 준비되어 있는 자세와 순발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요한 자질은 전문성이야. 국회의원은 모두 상임위활동을 하기 때문에 나만의 전문성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특히 자신이 속한 국회의원의 상임위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요즘 사회도, 국회도 어수선해 걱정이 많다는 선배는 나와의 저녁식사 후 다시 국회로 들어갔다. 저녁 7시40분, 이제 해는 뉘엿뉘엿 저무는데 국회 의원회관에는 하나씩 하나씩 전등이 켜진다. 길어지는 선배의 그림자 뒤에서 조용히 읊조려 본다. 선배, 들어가서 희망도 함께 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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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

-희망제작소 시니어 기자단 정인숙 자원활동가-


“어?! 이 녹음기 좋은데요, 카메라는 어떤 모델이죠?”


취재하러 온 나보단 내가 들고 온 녹음기와 카메라에 더 관심을 보인다. 늘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받는’ 입장이 되니 낯설다며 자꾸 웃는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질문에 성실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참 일품(一品)이다. 이야기를 ‘듣는’ 재주 뿐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재주도 남다르다. 정인숙(희망제작소 시니어 기자단)씨와의 인터뷰는 이처럼 감탄의 연속이었다.

 

 유한 이미지, 너그러운 인상, 날렵한 몸매의 정인숙 씨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기자다.


인생의 이모작, 그 첫 발을 내딛으며


정인숙(51)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다. 교직에서 함께 일했던 남편과 은퇴한 것은 지난 2월. 27년간 천직으로 여겼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교직생활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퇴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함께 살아왔고,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에 함께 은퇴를 결심한 거죠.”


평소 은퇴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시니어 기자단의 일원이 된 것은 ‘필연’ 아닐까.


“나름대로 혜택을 받은 세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고요. 퇴직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찰나에 희망제작소를 만나게 되었죠.”


그래서 3월부터 시작한 일이 희망제작소 안에서 NPO단체를 취재하는 시니어기자단 활동이다. 물론 시작이 쉽진 않았다. 50을 넘겨 시작한 시민기자가 만만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직업특성상 몸 깊숙이 체득된 ‘들어주는’ 기술은 취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일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배워야 할 것도 늘어나고요.”


51살, 정씨의 인생 이모작은 이제 막 첫 스타트를 끊었다.


언제나 ‘연습’하고 어디서나 ‘성실하게’


평소 책 읽는 습관은 정씨의 필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힘이 되어 기사작성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정씨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또 책 읽는 것은 그 연습에 많이 도움을 줍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그리고 기사를 위한 책이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아하는 일은 독서뿐만 아니다. 그림 그리기, 답사 가기, 여행하기, 농사짓기. 이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 정씨지만 마감날짜를 어긴 적이 한 번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은 기사를 쓴다. 비결을 묻자 오랜 직장생활이 ‘성실함’을 몸에 배게 했다고 대답한다. 늘 꽉 짜인 생활을 하다가 시간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 너무 한가할까 걱정은 기우였다.


“다양한 활동을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관해 늘 연습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역시’하는 감탄이 또 절로 나온다.


또래의 50대 자원활동가들로부터 배운다
정씨가 지금까지 취재한 NPO단체들을 보면 환경, 아동, 지역, 교육 등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다.


“처음이니까 모든 분야를 한 번씩 경험해보려고 해요. 하다보면 아무래도 관심분야가 생길 거예요. 그럼 그 때부터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해볼 생각이에요. 아직은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단체는 없냐고 묻자, “기억에는 다 남는걸요.”하며 웃는다. 물론 특별히 공감하는 활동가는 있었다고 한다.


“궁궐 지킴이, 박물관 유물 해설가, 노인복지센터 활동가. 이 분들이 모두 50대 활동가였어요. 어쩌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시는지 정말 많이 배우고 왔어요. 꾸준히 활동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참 좋았어요.”


정씨는 그들을 보며 한 달에 2편, 일 년에 20편, 5년에 100편의 기사를 쓴다는 자신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되 뇌였다고 한다. 선한 눈매가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날렵하게 변한다.


 

아힘나 평화학교 윤종태 교장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는 정인숙 시니어 기자의 모습.윤 교장 역시 희망제작소에서 행복설계 아카데미 과정을 수강한 후, NPO에서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시작했다.


‘먹고사니즘’에서 탈피한 나만의 철학 가져야


하루하루 바쁘지만 정씨는 꼭 하루에 얼마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나를 조절할 수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만나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인생의 이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한마디로 나만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거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인생목표는 크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깊고 원숙한 것이었다. ‘내 몫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살자’는 것. 그 깊고 원숙한 꿈을 위해 정씨는 오늘도 취재를 가고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기자는 ‘발’로 뛴다고들 한다. 그래서 기자가 취재 가는 곳곳에는 기자만의 발바닥 기록이 남는다. 인생의 이모작을 기자로 다시 시작하는 정인숙씨, 그가 가는 곳곳마다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이 또렷이 남기를 바란다. 더 선명히, 더 많이 발바닥 자국이 선명했으면 좋겠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시니어기자단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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