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없어도, 우리의 눈 속에 촛불이 있습니다.”
- 82cook 김기영씨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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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걱정만 했다. 푸념만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82cook 김기영씨(34). 그는 그렇게 조선일보에 광고를 주는 광고주에게 하루 한 번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네 살배기 아이를 둔 평범한 아줌마가 조선일보 불매 운동을 위해 하루 한 번 숙제(광고주에게 전화하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영씨(34)는 요리 살림 전문 사이트 82cook 회원이다. 82cook은 ‘양파즙 잘 내는 방법’에서부터 ‘아이들 이유식 잘 만드는 법’까지 요리, 육아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실용정보 사이트다. 김씨는 이곳에서 주로 음식 조리법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요리에 관심이 많던 이 사이트의 회원들도 덩달아 고민이 시작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들어오면 어쩌지? 도시락 싸줘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깊어지던 찰나에 조선일보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을 본 회원들은 조선일보를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래서 조선일보에 관한 글들이 자유게시판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내가 소비자다. 상품 구입비 중 일부가 광고비인데 소비자인 내가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 그런데 이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우리에게 공문을 보내왔다.”

그 이후 과정은 언론에 나온 대로다. 82cook 회원 중 일부는 공문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열었고, 이를 두고 조선일보 측에서 다시 82cook측에 성명서를 보내왔다. “한 번에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게 호흡하고 앞으로도 숙제를 계속해 나가겠다.” 김씨는 변화는 한 번에 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오후에는 촛불 집회에 나가겠다는 김기영씨. 그는 이명박 정권을 세차게 꼬집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타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타조는 머리만 처박으면 엉덩이까지 가려지는 줄 안다. 하나의 거짓말로 국민 모두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랫동안 82cook 회원으로 활동한 김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람들이 오프라인 밖으로 나와 서로 연대하는 모습은 분명 커뮤니티의 ‘진화’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촛불이 꺼지는 수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손에 촛불을 들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 눈속에 촛불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혹시 촛불이 사라진다고 해도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언제든지 다시 촛불을 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김기영씨의 '숙제'하기가 꽤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사IN> 인턴기자 송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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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빨간색 우비는 안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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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는 화가 많이 나 보였습니다. 반면 우비 장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들 옆에는 빨간 우비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노노데모’의 맞불 집회 준비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사건은 ‘노노데모’측이 우천을 대비해 주문한 우비 100여벌이 도착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우비를 놓고 돌아서려는 우비 장수를 관계자가 붙잡습니다. “우린 빨간색 우비는 안 입어!” 관계자가 또렷하게 말합니다. 빨리 빨간 우비를 빼라고 야단입니다. 난데없는 색깔 투정에 우비 장수가 당황합니다. “에이, 그냥 입어” 우비 장수가 애교도 부려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 다른 관계자는 한술 더 떠 “노란색도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우비 장수는 한참 동안 빨간색, 노란색 우비를 모두 분류하고서야 우비를 팔 수 있었습니다. ‘노노데모’는 우비의 ‘색깔’도 ‘정치색’으로 보이는 걸까요. 그 탓에 애먼 우비 장수만 고생입니다. 빨간색, 노란색 우비를 고스란히 다시 가져가는 우비 장수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참,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계자는 “몇 명이나 오늘 집회에 참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1000명도 더 온다”는 대답을 했는데요. 그래서 혹시 구입한 우비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청계광장에 가보았습니다. 가보니 백여 명 정도가 청계광장에 모여 있네요. ‘절대로’ 우비가 부족하진 않을 것 같네요.

<시사IN> 인턴기자 송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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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끝낼 수 없는 이야기

1980년 5월17일 계엄령이 선포됐다. 공수부대는 광주로 향했다. 이튿날,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누군가는 총에 다쳤고, 누군가는 피를 흘렸다.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의 시민군은 공수부대와 대치했다. 그날 시민군 전원이 사망했다. 그리고 무려 28년이 흘렀다.

2008년 5월 역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두산동아 백과사전)"

이것으로 5.18의 기억은 끝난 것일까. 5.18 기념 재단(이사 윤광장)을 찾았다.

 

▲ 1980년 5월의 금남로가 군화에 짓밟히고 있다. 5.18기념관 지하에 전시된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 앞쪽에는  5.18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수없이 늘어져 있다.


기억을 기억하라

1993년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의 요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그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5.18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가져 왔다. 5.18 기념재단(이하 재단)은 그 시기에 5.18 관련 주요기념사업 진행을 위해 조직되었다.

5.18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자회 등의 5월단체가 주로 ‘당사자회’의 성격을 갖는다면, 5.18 재단은 ‘비당사자’가 5.18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사업을 꾸려 나가는 역할을 한다.

5.18 재단의 조경태 사무처장은 “5.18은 ‘성역’을 깬 사건입니다. 절대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저항정신은 이후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5.18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희 재단의 몫입니다.”라고 설명했다.  

 
▲ 5.18을 직접 겪고 그 일로 고문까지 겪었던 조경태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그에게 5.18의 28주년은 누구에게보다 뜻깊다.

기억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크게 교육사업과 국제연대사업으로 나뉜다. 교육사업은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참여학습, 체험학습, 토론대회, Red Festa(5.18을 재현해 보는 프로그램)등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5.18 교과서>를 제작하기도 했다. 재단은 앞으로 이 교과서가 정식교과목에 포함되고 전국적으로 배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 제작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해야 ‘역사적 간극’을 해소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해소의 주체는 청소년이고, 그렇기에 청소년 교육사업에 더욱 집중할 생각입니다.”

한편 국제연대사업은 10년 동안 약40여 개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인종, 독재문제를 겪는 나라들과 포럼을 함께 열어 정보를 교환하며 해결점을 찾고 이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인사를 뽑아 매년 ‘광주인권상’을 수상한다. 이 사업 역시 “기억을 잘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대중 앞으로, 시민 속으로

기억의 주체는 ‘시민’이다. 문서의 기억은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그렇기에 일반 시민들 속에서 5.18이 자연스럽게 기억되도록 5.18재단은 노력하고 있다. 5월에 열리는 ‘난장 人 free’가  대표적인 행사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행사는 엄숙하고 형식적이기보다 ‘함께 놀아보자’는 느낌이 강하다. 5월이면 광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문화행사가 바로 ‘난장人 free’다. 매년 5월 18일을 전후로 약 4~5일간 열리는 이 행사는 무용, 콘서트, 연극, 마당극 등의 예술 공연을 통해 5.18을 이해하고, 5.18을 겪은 사람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돌을 맞은 이 행사는 높은 열기와 호응 속에 지난 25일 막을 내렸다.

 

 ◀ "올해도 기대하고 있어요."   5월25일 '난장 人 free' 행사 중 야외 음악회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행사는 올해 두 돌을 맞았다.

이렇게 5.18이 시민 속에 거부감 없이 녹아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행사와 더불어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나 만화작가 강풀의 <26년>등으로 5.18이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꽃잎>이나 <박하사탕>등에서 5.18이 배경이 되긴 했지만 <화려한 휴가>처럼 정면에서 5.18을 다룬 영화는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무리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건 5.18이 우리사회에서 보편화되었다는 증거고,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 현상입니다. 이제 사회문화 전반에 좀 더 세밀하게 5.18의 저항정신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물론 미디어를 통한 이러한 접근은 ‘신중’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아직 술래는 잡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5.18을 ‘지나간 일’로 기억한다. 하지만 93년 세워진 ‘5.18 문제해결 5대 원칙', 즉: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집단배상, 명예회복, 기념사업’을 톺아보면 여전히 5.18이 ‘끝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진상규명’의 경우 지금까지 ‘발포 책임자’를 가려내지 못한 상황이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5.18은 결코 ‘끝난’이야기가 될 수 없다.


▲ 5.18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동상. 서로의 아픔을 서로에게 기댔다.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5.18의 '보편화'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객관적 진상규명이 앞으로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당시 회의록과 같은 객관적 자료는 폐기될 상태고, 믿을 건 증언을 해 줄 사람을 찾는 일인데, 지금으로선....”

조 사무처장은 말을 줄였다. 책임자 처벌 역시 미흡하게 끝났다. 책임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김대중 정권 때 모두 사면됨으로써 법적, 도의적 면죄부를 얻은 상태다. 이처럼 남은 숙제가 여전하기에 재단의 마음도 바쁘다.

진실을 알리는데도 힘써야 하지만 5.18의 가치를 국제적 위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다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재단은 5.18 정신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치로 하여 5.18이 하나의 가치 아이콘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더욱 5.18 재단은 잡히지 않은 ‘술래잡기’에 열중할 것이다. 5.18 진상규명은 5.18의 국제화를 북돋우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끊임없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목적'이란 곧 무한대의 자유 확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인간이 자유를 만끽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역사는 종언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추구할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5.18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5.18을 기억할 때, 누구나 5.18의 정신을 보편적 가치로 인정할 때 비로소 5.18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5.18의 ‘보편화’가 곧 5.18의 ‘완성’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끝낼 수 없었던 이야기’도 ‘추억’이 되어있길, 꼭 그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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