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07.18 국회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꾸다.
  2. 2008.07.15 내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
  3. 2008.07.07 강북구의회가 구민을 사랑한다구요?
  4. 2008.07.06 부처님의 힘으로 촛불소녀를 지킨다.
  5. 2008.07.06 광장에서 술을 치우라는 아저씨, 누구?
  6. 2008.07.05 “손에 없어도, 우리의 눈 속에 촛불이 있습니다.”
  7. 2008.07.05 “우린 빨간색 우비는 안 입어!”
  8. 2008.07.02 [(재)5.18 기념재단] 아직은, 끝낼 수 없는 이야기

월간 [샘터] 8월호. '선배, 밥 좀 사주세요'

국회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꾸다.

-국회의원 비서관 박형민씨-


매끈한 검은색 정장 차림, 이종격투기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 국회로 향하는 발걸음. 뭇 사람들은 이런 선배를 국회 경호원으로 자주 오인한다. 하지만, 땡! 박형민(29)선배가 일하는 곳은 국회지만 그는 경호원이 아닌 비서관이다. 비서관이라니! 범상치 않은 그의 외모와 취미는 늘 사람들에게 ‘왜 (혹은) 어떻게 비서관?!’이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학문정치가 현실정치에 적용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싶다는 로망은 공부할 때도 늘 있었어. 그 과정은 의미 있는 일인 동시에 나에게 또 다른 공부가 되니까 말이야. 대학 때 밴드활동을 하고 지금 이종격투기를 하니까 내 직업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건 비서관에 대한 편견 때문일 거야. 사실 취미와 직업은 아무 상관없잖아?!”


선배의 말대로 국회의원 비서관 하면 사람들은 보통 ‘얌전한 사무직’이나 ‘능구렁이가 다 된 얌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선배는 그런 이미지가 ‘불만’이라며 비서관은 겉에서 볼 때와 차이가 크다고 강조한다. 독립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조력해 정책과 법을 만드는 일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것이 선배의 설명이다. 또 그렇기에 단순히 기능직으로 일하기보다 “궁합이 맞는 국회의원”과 일할 때, 훨씬 의미 있고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선배가 말하는 현실(국회 안의)정치란, 철학이 맞는 사람들이 만나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작년 9월 국회에 들어온 선배지만, 짧은 기간 동안 선배는 일명 ‘국회의 3중고’를 모두 겪었다. 국정감사, 대선, 총선이 바로 그것. “선거는 정말 힘들었어.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그랬지. 국회의원은 입법기관(Assemblyman)인 동시에 정치인(party member)이니까, ‘권력 재생산’이 목적이 될 수밖에 없잖아. 나 역시 의원의 낙선과 동시에 실업하는 거니까, 집착하게 되고 그런 문제들이 또 회의적으로 다가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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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청 앞에서 박형민 선배.




대선, 총선이 ‘심리적 압박전’이었다면 국정감사는 ‘정보의 폭로전’이라고 선배는 말한다. ‘행정부의 감시’라는 국회기능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장(場)이자, 비서관들의 정부싸움이 가장 극렬하게 이뤄지는 기간이 바로 이 때인 것이다. 1년이 안 된 시간동안 세 가지 일을 모두 겪은 선배, 굉장한 경험 아닐까. “경험은 무슨, 일 년 사이에 몰라보게 늙었어.(웃음)”


그럼에도 이 일을 그만 두고 싶진 않단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는 쾌감은 이 일을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비서관의 생각이 이슈화되고 공론화지만 선배는 억울하기보단 다행이라고 한다. “혹자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지. 난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대표성을 갖게 되는 게 참 좋아. 그리고 그 생각이 국가시스템으로 작용하는 법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정말 기쁜 일 아니겠어? 뭐, 아직 내 생각이 입법화된 건 없지만.(웃음)”


선배는 인턴 공채로 국회에 들어와서 비서관으로 진급한 케이스다. 국회 비서관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대게 선배처럼 공채로 뽑히거나 국회의원의 당선 전부터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비서관이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어떤 방법을 거쳐 들어오게 되더라도 비서관이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선배는 말한다. 국회는 늘 국민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고 뉴스가 생산되는 곳이라 일하는 순간순간 순발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결해야 한다. 고민하고 대안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렇기에 비서관에겐 늘 준비되어 있는 자세와 순발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요한 자질은 전문성이야. 국회의원은 모두 상임위활동을 하기 때문에 나만의 전문성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특히 자신이 속한 국회의원의 상임위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요즘 사회도, 국회도 어수선해 걱정이 많다는 선배는 나와의 저녁식사 후 다시 국회로 들어갔다. 저녁 7시40분, 이제 해는 뉘엿뉘엿 저무는데 국회 의원회관에는 하나씩 하나씩 전등이 켜진다. 길어지는 선배의 그림자 뒤에서 조용히 읊조려 본다. 선배, 들어가서 희망도 함께 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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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

-희망제작소 시니어 기자단 정인숙 자원활동가-


“어?! 이 녹음기 좋은데요, 카메라는 어떤 모델이죠?”


취재하러 온 나보단 내가 들고 온 녹음기와 카메라에 더 관심을 보인다. 늘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받는’ 입장이 되니 낯설다며 자꾸 웃는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질문에 성실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참 일품(一品)이다. 이야기를 ‘듣는’ 재주 뿐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재주도 남다르다. 정인숙(희망제작소 시니어 기자단)씨와의 인터뷰는 이처럼 감탄의 연속이었다.

 

 유한 이미지, 너그러운 인상, 날렵한 몸매의 정인숙 씨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기자다.


인생의 이모작, 그 첫 발을 내딛으며


정인숙(51)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다. 교직에서 함께 일했던 남편과 은퇴한 것은 지난 2월. 27년간 천직으로 여겼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교직생활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퇴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함께 살아왔고,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에 함께 은퇴를 결심한 거죠.”


평소 은퇴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시니어 기자단의 일원이 된 것은 ‘필연’ 아닐까.


“나름대로 혜택을 받은 세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고요. 퇴직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찰나에 희망제작소를 만나게 되었죠.”


그래서 3월부터 시작한 일이 희망제작소 안에서 NPO단체를 취재하는 시니어기자단 활동이다. 물론 시작이 쉽진 않았다. 50을 넘겨 시작한 시민기자가 만만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직업특성상 몸 깊숙이 체득된 ‘들어주는’ 기술은 취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일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배워야 할 것도 늘어나고요.”


51살, 정씨의 인생 이모작은 이제 막 첫 스타트를 끊었다.


언제나 ‘연습’하고 어디서나 ‘성실하게’


평소 책 읽는 습관은 정씨의 필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힘이 되어 기사작성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정씨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또 책 읽는 것은 그 연습에 많이 도움을 줍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그리고 기사를 위한 책이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아하는 일은 독서뿐만 아니다. 그림 그리기, 답사 가기, 여행하기, 농사짓기. 이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 정씨지만 마감날짜를 어긴 적이 한 번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은 기사를 쓴다. 비결을 묻자 오랜 직장생활이 ‘성실함’을 몸에 배게 했다고 대답한다. 늘 꽉 짜인 생활을 하다가 시간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 너무 한가할까 걱정은 기우였다.


“다양한 활동을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관해 늘 연습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역시’하는 감탄이 또 절로 나온다.


또래의 50대 자원활동가들로부터 배운다
정씨가 지금까지 취재한 NPO단체들을 보면 환경, 아동, 지역, 교육 등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다.


“처음이니까 모든 분야를 한 번씩 경험해보려고 해요. 하다보면 아무래도 관심분야가 생길 거예요. 그럼 그 때부터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해볼 생각이에요. 아직은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단체는 없냐고 묻자, “기억에는 다 남는걸요.”하며 웃는다. 물론 특별히 공감하는 활동가는 있었다고 한다.


“궁궐 지킴이, 박물관 유물 해설가, 노인복지센터 활동가. 이 분들이 모두 50대 활동가였어요. 어쩌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시는지 정말 많이 배우고 왔어요. 꾸준히 활동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참 좋았어요.”


정씨는 그들을 보며 한 달에 2편, 일 년에 20편, 5년에 100편의 기사를 쓴다는 자신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되 뇌였다고 한다. 선한 눈매가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날렵하게 변한다.


 

아힘나 평화학교 윤종태 교장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는 정인숙 시니어 기자의 모습.윤 교장 역시 희망제작소에서 행복설계 아카데미 과정을 수강한 후, NPO에서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시작했다.


‘먹고사니즘’에서 탈피한 나만의 철학 가져야


하루하루 바쁘지만 정씨는 꼭 하루에 얼마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나를 조절할 수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만나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인생의 이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한마디로 나만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거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인생목표는 크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깊고 원숙한 것이었다. ‘내 몫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살자’는 것. 그 깊고 원숙한 꿈을 위해 정씨는 오늘도 취재를 가고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기자는 ‘발’로 뛴다고들 한다. 그래서 기자가 취재 가는 곳곳에는 기자만의 발바닥 기록이 남는다. 인생의 이모작을 기자로 다시 시작하는 정인숙씨, 그가 가는 곳곳마다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이 또렷이 남기를 바란다. 더 선명히, 더 많이 발바닥 자국이 선명했으면 좋겠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시니어기자단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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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의회가 구민을 사랑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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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다"고 노래하는 사람이 김광석 말고 여기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6월16일과 7월1일 두 차례나 부결시킨 강북구의회 의원들입니다. 이들은 4일 강북구의회를 찾은 시사IN 인턴기자들에게 "그래도 구민들을 생각하는 우리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했습니다.

강북구의회 의원들은 한나라당 7명, 통합민주당 6명, 진보신당 1명으로 모두 14명. 그런데 진보신당의 최선 구의원이 지난 6월 5일 '구립 어린이집과 구청 구내식당 등, 관내 공공 급식 분야에서 미국산 쇠고기 사용을 금지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강북구 의회에 냈습니다. 그런데 이 결의안이 찬성3, 반대9, 기권2표로 부결되면서 문제는 붉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구의회 의원들이 당시 의정비 인상반대를 홀로 주장하던 최선 의원을 경계한다는 말도 들렸고, 의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이날부터 강북구의회 게시판에는 "너희들이 정말 구민을 위한 사람들이 맞냐?"(안혜리씨), "강북구를 망신시키러 모인 분들 같다"(박지선씨), "구의원 딱지 떼고 물러들 나시오"(신광식씨) 같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나라당 소속 의원 5명과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 4명이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쇠고기 사용 금지 결의안"을 본회의에 제출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쇠고기 사용 금지 결의안

1. 강북구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광우병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해줄 것을 결의하고

2.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가 협상이 우리 정부가 원하는 대로 협상이 되더라도 광우병에 대한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구민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촉구하며

3. 강북구 의회는 우리 35만여 강북구민들이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제반의 모든 행동을 강북구민과 함께 할 것을 밝히며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를 결의하는 바입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의회 의원

전화 인터뷰에 응한 한나라당 소속 의원은 "최선 의원의 결의안은 관내의 어린이집 등 일부에만 적용된다. 민간 부문까지 포괄하는 보완이 필요했다"며 결의안을 제출한 의도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위의 결의안은 다소 두루뭉수리 합니다. 한나라당의 공식입장과 한 치의 다름도 없지요. 

결국 민주당 의원 4명이 이 결의안을 철회했습니다. 이들은 "결의안의 강도를 세게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라며 철회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는 민주당 의원 6명이 새로운 결의안을 제안했는데, 앞서 부결된 최선 의원의 결의안에 통합민주당의 요구 사항인 '가축 전염병 예방법 개정'과 '전면 재협상'을 추가시킨 안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의 한 구의원은 "민주당 구의원들이 제시한 결의안은 우리 중앙당(한나라당)의 입장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무기명 투표이기에 우리가 반대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나라당 당인(당원)인 내가 볼 때 거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7월1일, 통합민주당 주도로 만든 새로운 결의안은 찬성 7표, 반대 7표로 동수 부결되었고, 두 번째 부결로 강북구의회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또 다시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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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구의원들은 '보완해야한다'는 이유를 들어 부결시켰던 최선 의원의 결의안을 다시 끄집어내어 통합민주당의 주장을 집어넣은 뒤 결의하려고 하고, 한나라당 구의원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한나라당의 입장 때문에 선뜻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가 없었던 듯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결의안을 최선 의원이 다시 조심스럽게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10일 즈음 강북구의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강북구의회 의원들은 하나같이 "구민의 건강을 진정으로 생각한다. 이 점만은 꼭 알아 달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사IN> 김소라, 송은하, 이재덕 인턴기자




인터뷰의 달인 '거절' 강북구의원 선생


물론 모두 만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손잡이 없는 뜨거운 냄비는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그래도 몰랐다. 단 세 명일 줄은. 인터뷰를 요청한 11명의 구의원 중 대면 인터뷰를 응한 사람은 셋이었다. 수차례 다이얼을 돌린 결과, 두 명의 의원은 전화로 짧은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 채무가형 달인 : "쇠고기 결의안 부결 관련해 질문을~" 처음엔 받았다. 질의할 내용도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 바쁘니 잠시 후에 전화하라던 'ㄱ'의원은 마지막까지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로 일관했다. 'ㄴ'의원은 신호음이 가는 도중 폴더를 닫는 과감함도 보였다. 시간 나는 대로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통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촉전화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주시는 그대는 진정한 채무자!

2. 미꾸라지형 달인 :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ㄷ'의원은 장거리 운전중이라 했다. 다시 걸자 귀한 손님 접대중이라 했고, 그 다음엔 전화 받을 시간이 없다 했다. 반면 'ㄹ'의원은 인터뷰를 약속했다. 허나 약속시간 30분 전 확인 전화를 걸자 지방에 급한 일이 있으니 다른 의원을 만나라고 권했다. 사실 확인은 할 수도 없지만, 중요치도 않다. 사실이든, 아니든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는 그대의 위기 관리 능력만큼은 Perfect!

3. 벽창우형 달인 : 'ㅁ'의원에겐 말 한마디 제대로 걸지 못했다. 이쪽 소개가 채 끝나기고 전에 "나는 언론을 믿지 않는다"라고 선언했기 때문.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전화는 끊겼다. 내공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완전히 압도하는 그대의 대화기술은 거의 ART의 경지!

4. 방관자형 달인 : 운 좋게 약속도 안했는데 'ㅂ'의원을 만났다. 'ㅂ'의원은 통화 중이었다. 통화를 끝낸 'ㅂ'의원에게 '결의안 부결'에 대해 물었다. "그건 내가 대답할 게 아닌데..."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아니란다. 다른 질문을 하자 "나는 상관없는 사람이다"라고 받는다. 나서야 할 때와 아닌 때를 완벽히 구분하는 그대는 타이밍의 귀재!

<시사IN> 송은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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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힘으로 촛불소녀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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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보자마자 “아~~”합니다. 사진 찍느라 분주한 모습들입니다. 무엇보다 밝고 예뻐서 좋습니다. 시국법회추진위원회가 선보인 ‘연등소녀'가 인기 만점입니다.

전통등으로 다시 태어난 촛불소녀는 여전히 다부진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전통등연구원(www.korealantern.com)의 백창호 선생님이 만든 작품입니다.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촛불소녀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고 시국법회추진위원회 안에서도 칭찬이 자자합니다. “부처님의 힘으로 촛불소녀를 지켜내고 싶다는 이미지를 형상화 했다” 시국법회추진위원회의 이우용씨의 설명입니다.

'연등소녀' 전통등은 나무를 갈아 뼈대를 만들고 한지를 손수 붙여 만든 등입니다.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 정성으로 촛불소녀가가 연등소녀로 다시 태어났으니 시민들의 반응도 뜨거울 수밖에요. 김인자씨는 “완벽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습니다.

연등소녀가 들고 있는 것은 연꽃입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봉오리를 틔는 꽃입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시민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시사IN> 인턴기자 송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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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술을 치우라는 아저씨,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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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치워라.”
다소 거친 피켓을 들고 시청광장에 서 있는 분이 있습니다. 6월 말부터 촛불집회 때마다 이 피켓을 들고 있는 경원식씨(39)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술을 판매하는 천막 앞에서 팻말을 들고 있습니다.

5월 말부터 집회를 나왔다는 경씨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감정적으로 일어난 폭행사건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새벽이 되면 예민해진다. 술을 마시게 되면 더 그렇다. 한두 잔 가볍게 마시는 것은 좋지만 만취상태가 돼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좋은 의도의 집회이니 만큼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덧붙입니다.

술을 파는 상점 주인들은 난감합니다. 상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합니다. 경씨는 상인들에게 술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약속하지 않을 경우, 그 상점 앞에서 피켓을 듭니다.

집회 현장을 청소하는 사람, 음식을 지원하는 사람. 경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이들처럼 집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자신합니다.

<시사IN> 인턴기자 송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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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없어도, 우리의 눈 속에 촛불이 있습니다.”
- 82cook 김기영씨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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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걱정만 했다. 푸념만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82cook 김기영씨(34). 그는 그렇게 조선일보에 광고를 주는 광고주에게 하루 한 번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네 살배기 아이를 둔 평범한 아줌마가 조선일보 불매 운동을 위해 하루 한 번 숙제(광고주에게 전화하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영씨(34)는 요리 살림 전문 사이트 82cook 회원이다. 82cook은 ‘양파즙 잘 내는 방법’에서부터 ‘아이들 이유식 잘 만드는 법’까지 요리, 육아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실용정보 사이트다. 김씨는 이곳에서 주로 음식 조리법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요리에 관심이 많던 이 사이트의 회원들도 덩달아 고민이 시작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들어오면 어쩌지? 도시락 싸줘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깊어지던 찰나에 조선일보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을 본 회원들은 조선일보를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래서 조선일보에 관한 글들이 자유게시판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내가 소비자다. 상품 구입비 중 일부가 광고비인데 소비자인 내가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 그런데 이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우리에게 공문을 보내왔다.”

그 이후 과정은 언론에 나온 대로다. 82cook 회원 중 일부는 공문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열었고, 이를 두고 조선일보 측에서 다시 82cook측에 성명서를 보내왔다. “한 번에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게 호흡하고 앞으로도 숙제를 계속해 나가겠다.” 김씨는 변화는 한 번에 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오후에는 촛불 집회에 나가겠다는 김기영씨. 그는 이명박 정권을 세차게 꼬집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타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타조는 머리만 처박으면 엉덩이까지 가려지는 줄 안다. 하나의 거짓말로 국민 모두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랫동안 82cook 회원으로 활동한 김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람들이 오프라인 밖으로 나와 서로 연대하는 모습은 분명 커뮤니티의 ‘진화’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촛불이 꺼지는 수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손에 촛불을 들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 눈속에 촛불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혹시 촛불이 사라진다고 해도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언제든지 다시 촛불을 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김기영씨의 '숙제'하기가 꽤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사IN> 인턴기자 송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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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빨간색 우비는 안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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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는 화가 많이 나 보였습니다. 반면 우비 장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들 옆에는 빨간 우비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노노데모’의 맞불 집회 준비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사건은 ‘노노데모’측이 우천을 대비해 주문한 우비 100여벌이 도착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우비를 놓고 돌아서려는 우비 장수를 관계자가 붙잡습니다. “우린 빨간색 우비는 안 입어!” 관계자가 또렷하게 말합니다. 빨리 빨간 우비를 빼라고 야단입니다. 난데없는 색깔 투정에 우비 장수가 당황합니다. “에이, 그냥 입어” 우비 장수가 애교도 부려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 다른 관계자는 한술 더 떠 “노란색도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우비 장수는 한참 동안 빨간색, 노란색 우비를 모두 분류하고서야 우비를 팔 수 있었습니다. ‘노노데모’는 우비의 ‘색깔’도 ‘정치색’으로 보이는 걸까요. 그 탓에 애먼 우비 장수만 고생입니다. 빨간색, 노란색 우비를 고스란히 다시 가져가는 우비 장수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참,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계자는 “몇 명이나 오늘 집회에 참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1000명도 더 온다”는 대답을 했는데요. 그래서 혹시 구입한 우비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청계광장에 가보았습니다. 가보니 백여 명 정도가 청계광장에 모여 있네요. ‘절대로’ 우비가 부족하진 않을 것 같네요.

<시사IN> 인턴기자 송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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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끝낼 수 없는 이야기

1980년 5월17일 계엄령이 선포됐다. 공수부대는 광주로 향했다. 이튿날,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누군가는 총에 다쳤고, 누군가는 피를 흘렸다.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의 시민군은 공수부대와 대치했다. 그날 시민군 전원이 사망했다. 그리고 무려 28년이 흘렀다.

2008년 5월 역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두산동아 백과사전)"

이것으로 5.18의 기억은 끝난 것일까. 5.18 기념 재단(이사 윤광장)을 찾았다.

 

▲ 1980년 5월의 금남로가 군화에 짓밟히고 있다. 5.18기념관 지하에 전시된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 앞쪽에는  5.18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수없이 늘어져 있다.


기억을 기억하라

1993년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의 요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그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5.18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가져 왔다. 5.18 기념재단(이하 재단)은 그 시기에 5.18 관련 주요기념사업 진행을 위해 조직되었다.

5.18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자회 등의 5월단체가 주로 ‘당사자회’의 성격을 갖는다면, 5.18 재단은 ‘비당사자’가 5.18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사업을 꾸려 나가는 역할을 한다.

5.18 재단의 조경태 사무처장은 “5.18은 ‘성역’을 깬 사건입니다. 절대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저항정신은 이후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5.18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희 재단의 몫입니다.”라고 설명했다.  

 
▲ 5.18을 직접 겪고 그 일로 고문까지 겪었던 조경태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그에게 5.18의 28주년은 누구에게보다 뜻깊다.

기억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크게 교육사업과 국제연대사업으로 나뉜다. 교육사업은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참여학습, 체험학습, 토론대회, Red Festa(5.18을 재현해 보는 프로그램)등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5.18 교과서>를 제작하기도 했다. 재단은 앞으로 이 교과서가 정식교과목에 포함되고 전국적으로 배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 제작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해야 ‘역사적 간극’을 해소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해소의 주체는 청소년이고, 그렇기에 청소년 교육사업에 더욱 집중할 생각입니다.”

한편 국제연대사업은 10년 동안 약40여 개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인종, 독재문제를 겪는 나라들과 포럼을 함께 열어 정보를 교환하며 해결점을 찾고 이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인사를 뽑아 매년 ‘광주인권상’을 수상한다. 이 사업 역시 “기억을 잘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대중 앞으로, 시민 속으로

기억의 주체는 ‘시민’이다. 문서의 기억은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그렇기에 일반 시민들 속에서 5.18이 자연스럽게 기억되도록 5.18재단은 노력하고 있다. 5월에 열리는 ‘난장 人 free’가  대표적인 행사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행사는 엄숙하고 형식적이기보다 ‘함께 놀아보자’는 느낌이 강하다. 5월이면 광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문화행사가 바로 ‘난장人 free’다. 매년 5월 18일을 전후로 약 4~5일간 열리는 이 행사는 무용, 콘서트, 연극, 마당극 등의 예술 공연을 통해 5.18을 이해하고, 5.18을 겪은 사람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돌을 맞은 이 행사는 높은 열기와 호응 속에 지난 25일 막을 내렸다.

 

 ◀ "올해도 기대하고 있어요."   5월25일 '난장 人 free' 행사 중 야외 음악회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행사는 올해 두 돌을 맞았다.

이렇게 5.18이 시민 속에 거부감 없이 녹아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행사와 더불어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나 만화작가 강풀의 <26년>등으로 5.18이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꽃잎>이나 <박하사탕>등에서 5.18이 배경이 되긴 했지만 <화려한 휴가>처럼 정면에서 5.18을 다룬 영화는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무리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건 5.18이 우리사회에서 보편화되었다는 증거고,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 현상입니다. 이제 사회문화 전반에 좀 더 세밀하게 5.18의 저항정신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물론 미디어를 통한 이러한 접근은 ‘신중’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아직 술래는 잡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5.18을 ‘지나간 일’로 기억한다. 하지만 93년 세워진 ‘5.18 문제해결 5대 원칙', 즉: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집단배상, 명예회복, 기념사업’을 톺아보면 여전히 5.18이 ‘끝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진상규명’의 경우 지금까지 ‘발포 책임자’를 가려내지 못한 상황이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5.18은 결코 ‘끝난’이야기가 될 수 없다.


▲ 5.18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동상. 서로의 아픔을 서로에게 기댔다.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5.18의 '보편화'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객관적 진상규명이 앞으로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당시 회의록과 같은 객관적 자료는 폐기될 상태고, 믿을 건 증언을 해 줄 사람을 찾는 일인데, 지금으로선....”

조 사무처장은 말을 줄였다. 책임자 처벌 역시 미흡하게 끝났다. 책임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김대중 정권 때 모두 사면됨으로써 법적, 도의적 면죄부를 얻은 상태다. 이처럼 남은 숙제가 여전하기에 재단의 마음도 바쁘다.

진실을 알리는데도 힘써야 하지만 5.18의 가치를 국제적 위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다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재단은 5.18 정신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치로 하여 5.18이 하나의 가치 아이콘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더욱 5.18 재단은 잡히지 않은 ‘술래잡기’에 열중할 것이다. 5.18 진상규명은 5.18의 국제화를 북돋우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끊임없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목적'이란 곧 무한대의 자유 확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인간이 자유를 만끽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역사는 종언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추구할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5.18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5.18을 기억할 때, 누구나 5.18의 정신을 보편적 가치로 인정할 때 비로소 5.18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5.18의 ‘보편화’가 곧 5.18의 ‘완성’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끝낼 수 없었던 이야기’도 ‘추억’이 되어있길, 꼭 그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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