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Begegnung'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7.18 국회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꾸다.
  2. 2008.07.15 내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
  3. 2008.07.02 [(재)5.18 기념재단] 아직은, 끝낼 수 없는 이야기

월간 [샘터] 8월호. '선배, 밥 좀 사주세요'

국회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꾸다.

-국회의원 비서관 박형민씨-


매끈한 검은색 정장 차림, 이종격투기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 국회로 향하는 발걸음. 뭇 사람들은 이런 선배를 국회 경호원으로 자주 오인한다. 하지만, 땡! 박형민(29)선배가 일하는 곳은 국회지만 그는 경호원이 아닌 비서관이다. 비서관이라니! 범상치 않은 그의 외모와 취미는 늘 사람들에게 ‘왜 (혹은) 어떻게 비서관?!’이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학문정치가 현실정치에 적용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싶다는 로망은 공부할 때도 늘 있었어. 그 과정은 의미 있는 일인 동시에 나에게 또 다른 공부가 되니까 말이야. 대학 때 밴드활동을 하고 지금 이종격투기를 하니까 내 직업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건 비서관에 대한 편견 때문일 거야. 사실 취미와 직업은 아무 상관없잖아?!”


선배의 말대로 국회의원 비서관 하면 사람들은 보통 ‘얌전한 사무직’이나 ‘능구렁이가 다 된 얌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선배는 그런 이미지가 ‘불만’이라며 비서관은 겉에서 볼 때와 차이가 크다고 강조한다. 독립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조력해 정책과 법을 만드는 일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것이 선배의 설명이다. 또 그렇기에 단순히 기능직으로 일하기보다 “궁합이 맞는 국회의원”과 일할 때, 훨씬 의미 있고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선배가 말하는 현실(국회 안의)정치란, 철학이 맞는 사람들이 만나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작년 9월 국회에 들어온 선배지만, 짧은 기간 동안 선배는 일명 ‘국회의 3중고’를 모두 겪었다. 국정감사, 대선, 총선이 바로 그것. “선거는 정말 힘들었어.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그랬지. 국회의원은 입법기관(Assemblyman)인 동시에 정치인(party member)이니까, ‘권력 재생산’이 목적이 될 수밖에 없잖아. 나 역시 의원의 낙선과 동시에 실업하는 거니까, 집착하게 되고 그런 문제들이 또 회의적으로 다가왔거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회 본청 앞에서 박형민 선배.




대선, 총선이 ‘심리적 압박전’이었다면 국정감사는 ‘정보의 폭로전’이라고 선배는 말한다. ‘행정부의 감시’라는 국회기능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장(場)이자, 비서관들의 정부싸움이 가장 극렬하게 이뤄지는 기간이 바로 이 때인 것이다. 1년이 안 된 시간동안 세 가지 일을 모두 겪은 선배, 굉장한 경험 아닐까. “경험은 무슨, 일 년 사이에 몰라보게 늙었어.(웃음)”


그럼에도 이 일을 그만 두고 싶진 않단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는 쾌감은 이 일을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비서관의 생각이 이슈화되고 공론화지만 선배는 억울하기보단 다행이라고 한다. “혹자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지. 난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대표성을 갖게 되는 게 참 좋아. 그리고 그 생각이 국가시스템으로 작용하는 법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정말 기쁜 일 아니겠어? 뭐, 아직 내 생각이 입법화된 건 없지만.(웃음)”


선배는 인턴 공채로 국회에 들어와서 비서관으로 진급한 케이스다. 국회 비서관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대게 선배처럼 공채로 뽑히거나 국회의원의 당선 전부터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비서관이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어떤 방법을 거쳐 들어오게 되더라도 비서관이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선배는 말한다. 국회는 늘 국민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고 뉴스가 생산되는 곳이라 일하는 순간순간 순발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결해야 한다. 고민하고 대안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렇기에 비서관에겐 늘 준비되어 있는 자세와 순발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요한 자질은 전문성이야. 국회의원은 모두 상임위활동을 하기 때문에 나만의 전문성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특히 자신이 속한 국회의원의 상임위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요즘 사회도, 국회도 어수선해 걱정이 많다는 선배는 나와의 저녁식사 후 다시 국회로 들어갔다. 저녁 7시40분, 이제 해는 뉘엿뉘엿 저무는데 국회 의원회관에는 하나씩 하나씩 전등이 켜진다. 길어지는 선배의 그림자 뒤에서 조용히 읊조려 본다. 선배, 들어가서 희망도 함께 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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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

-희망제작소 시니어 기자단 정인숙 자원활동가-


“어?! 이 녹음기 좋은데요, 카메라는 어떤 모델이죠?”


취재하러 온 나보단 내가 들고 온 녹음기와 카메라에 더 관심을 보인다. 늘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받는’ 입장이 되니 낯설다며 자꾸 웃는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질문에 성실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참 일품(一品)이다. 이야기를 ‘듣는’ 재주 뿐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재주도 남다르다. 정인숙(희망제작소 시니어 기자단)씨와의 인터뷰는 이처럼 감탄의 연속이었다.

 

 유한 이미지, 너그러운 인상, 날렵한 몸매의 정인숙 씨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기자다.


인생의 이모작, 그 첫 발을 내딛으며


정인숙(51)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다. 교직에서 함께 일했던 남편과 은퇴한 것은 지난 2월. 27년간 천직으로 여겼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교직생활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퇴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함께 살아왔고,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에 함께 은퇴를 결심한 거죠.”


평소 은퇴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시니어 기자단의 일원이 된 것은 ‘필연’ 아닐까.


“나름대로 혜택을 받은 세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고요. 퇴직 이후 시민단체에서 일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찰나에 희망제작소를 만나게 되었죠.”


그래서 3월부터 시작한 일이 희망제작소 안에서 NPO단체를 취재하는 시니어기자단 활동이다. 물론 시작이 쉽진 않았다. 50을 넘겨 시작한 시민기자가 만만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직업특성상 몸 깊숙이 체득된 ‘들어주는’ 기술은 취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일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배워야 할 것도 늘어나고요.”


51살, 정씨의 인생 이모작은 이제 막 첫 스타트를 끊었다.


언제나 ‘연습’하고 어디서나 ‘성실하게’


평소 책 읽는 습관은 정씨의 필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힘이 되어 기사작성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정씨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또 책 읽는 것은 그 연습에 많이 도움을 줍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그리고 기사를 위한 책이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아하는 일은 독서뿐만 아니다. 그림 그리기, 답사 가기, 여행하기, 농사짓기. 이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 정씨지만 마감날짜를 어긴 적이 한 번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은 기사를 쓴다. 비결을 묻자 오랜 직장생활이 ‘성실함’을 몸에 배게 했다고 대답한다. 늘 꽉 짜인 생활을 하다가 시간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 너무 한가할까 걱정은 기우였다.


“다양한 활동을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관해 늘 연습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역시’하는 감탄이 또 절로 나온다.


또래의 50대 자원활동가들로부터 배운다
정씨가 지금까지 취재한 NPO단체들을 보면 환경, 아동, 지역, 교육 등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다.


“처음이니까 모든 분야를 한 번씩 경험해보려고 해요. 하다보면 아무래도 관심분야가 생길 거예요. 그럼 그 때부터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해볼 생각이에요. 아직은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단체는 없냐고 묻자, “기억에는 다 남는걸요.”하며 웃는다. 물론 특별히 공감하는 활동가는 있었다고 한다.


“궁궐 지킴이, 박물관 유물 해설가, 노인복지센터 활동가. 이 분들이 모두 50대 활동가였어요. 어쩌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시는지 정말 많이 배우고 왔어요. 꾸준히 활동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참 좋았어요.”


정씨는 그들을 보며 한 달에 2편, 일 년에 20편, 5년에 100편의 기사를 쓴다는 자신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되 뇌였다고 한다. 선한 눈매가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날렵하게 변한다.


 

아힘나 평화학교 윤종태 교장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는 정인숙 시니어 기자의 모습.윤 교장 역시 희망제작소에서 행복설계 아카데미 과정을 수강한 후, NPO에서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시작했다.


‘먹고사니즘’에서 탈피한 나만의 철학 가져야


하루하루 바쁘지만 정씨는 꼭 하루에 얼마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나를 조절할 수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만나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인생의 이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한마디로 나만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거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인생목표는 크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깊고 원숙한 것이었다. ‘내 몫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살자’는 것. 그 깊고 원숙한 꿈을 위해 정씨는 오늘도 취재를 가고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기자는 ‘발’로 뛴다고들 한다. 그래서 기자가 취재 가는 곳곳에는 기자만의 발바닥 기록이 남는다. 인생의 이모작을 기자로 다시 시작하는 정인숙씨, 그가 가는 곳곳마다 소중한 발바닥의 기록이 또렷이 남기를 바란다. 더 선명히, 더 많이 발바닥 자국이 선명했으면 좋겠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시니어기자단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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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끝낼 수 없는 이야기

1980년 5월17일 계엄령이 선포됐다. 공수부대는 광주로 향했다. 이튿날,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누군가는 총에 다쳤고, 누군가는 피를 흘렸다.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의 시민군은 공수부대와 대치했다. 그날 시민군 전원이 사망했다. 그리고 무려 28년이 흘렀다.

2008년 5월 역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두산동아 백과사전)"

이것으로 5.18의 기억은 끝난 것일까. 5.18 기념 재단(이사 윤광장)을 찾았다.

 

▲ 1980년 5월의 금남로가 군화에 짓밟히고 있다. 5.18기념관 지하에 전시된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 앞쪽에는  5.18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수없이 늘어져 있다.


기억을 기억하라

1993년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의 요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그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5.18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가져 왔다. 5.18 기념재단(이하 재단)은 그 시기에 5.18 관련 주요기념사업 진행을 위해 조직되었다.

5.18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자회 등의 5월단체가 주로 ‘당사자회’의 성격을 갖는다면, 5.18 재단은 ‘비당사자’가 5.18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사업을 꾸려 나가는 역할을 한다.

5.18 재단의 조경태 사무처장은 “5.18은 ‘성역’을 깬 사건입니다. 절대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저항정신은 이후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5.18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희 재단의 몫입니다.”라고 설명했다.  

 
▲ 5.18을 직접 겪고 그 일로 고문까지 겪었던 조경태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그에게 5.18의 28주년은 누구에게보다 뜻깊다.

기억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크게 교육사업과 국제연대사업으로 나뉜다. 교육사업은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참여학습, 체험학습, 토론대회, Red Festa(5.18을 재현해 보는 프로그램)등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5.18 교과서>를 제작하기도 했다. 재단은 앞으로 이 교과서가 정식교과목에 포함되고 전국적으로 배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 제작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해야 ‘역사적 간극’을 해소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해소의 주체는 청소년이고, 그렇기에 청소년 교육사업에 더욱 집중할 생각입니다.”

한편 국제연대사업은 10년 동안 약40여 개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인종, 독재문제를 겪는 나라들과 포럼을 함께 열어 정보를 교환하며 해결점을 찾고 이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인사를 뽑아 매년 ‘광주인권상’을 수상한다. 이 사업 역시 “기억을 잘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대중 앞으로, 시민 속으로

기억의 주체는 ‘시민’이다. 문서의 기억은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그렇기에 일반 시민들 속에서 5.18이 자연스럽게 기억되도록 5.18재단은 노력하고 있다. 5월에 열리는 ‘난장 人 free’가  대표적인 행사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행사는 엄숙하고 형식적이기보다 ‘함께 놀아보자’는 느낌이 강하다. 5월이면 광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문화행사가 바로 ‘난장人 free’다. 매년 5월 18일을 전후로 약 4~5일간 열리는 이 행사는 무용, 콘서트, 연극, 마당극 등의 예술 공연을 통해 5.18을 이해하고, 5.18을 겪은 사람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돌을 맞은 이 행사는 높은 열기와 호응 속에 지난 25일 막을 내렸다.

 

 ◀ "올해도 기대하고 있어요."   5월25일 '난장 人 free' 행사 중 야외 음악회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행사는 올해 두 돌을 맞았다.

이렇게 5.18이 시민 속에 거부감 없이 녹아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행사와 더불어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나 만화작가 강풀의 <26년>등으로 5.18이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꽃잎>이나 <박하사탕>등에서 5.18이 배경이 되긴 했지만 <화려한 휴가>처럼 정면에서 5.18을 다룬 영화는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무리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건 5.18이 우리사회에서 보편화되었다는 증거고,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 현상입니다. 이제 사회문화 전반에 좀 더 세밀하게 5.18의 저항정신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물론 미디어를 통한 이러한 접근은 ‘신중’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아직 술래는 잡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5.18을 ‘지나간 일’로 기억한다. 하지만 93년 세워진 ‘5.18 문제해결 5대 원칙', 즉: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집단배상, 명예회복, 기념사업’을 톺아보면 여전히 5.18이 ‘끝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진상규명’의 경우 지금까지 ‘발포 책임자’를 가려내지 못한 상황이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5.18은 결코 ‘끝난’이야기가 될 수 없다.


▲ 5.18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동상. 서로의 아픔을 서로에게 기댔다.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5.18의 '보편화'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객관적 진상규명이 앞으로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당시 회의록과 같은 객관적 자료는 폐기될 상태고, 믿을 건 증언을 해 줄 사람을 찾는 일인데, 지금으로선....”

조 사무처장은 말을 줄였다. 책임자 처벌 역시 미흡하게 끝났다. 책임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김대중 정권 때 모두 사면됨으로써 법적, 도의적 면죄부를 얻은 상태다. 이처럼 남은 숙제가 여전하기에 재단의 마음도 바쁘다.

진실을 알리는데도 힘써야 하지만 5.18의 가치를 국제적 위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다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재단은 5.18 정신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치로 하여 5.18이 하나의 가치 아이콘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더욱 5.18 재단은 잡히지 않은 ‘술래잡기’에 열중할 것이다. 5.18 진상규명은 5.18의 국제화를 북돋우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끊임없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목적'이란 곧 무한대의 자유 확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인간이 자유를 만끽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역사는 종언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추구할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5.18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5.18을 기억할 때, 누구나 5.18의 정신을 보편적 가치로 인정할 때 비로소 5.18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5.18의 ‘보편화’가 곧 5.18의 ‘완성’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끝낼 수 없었던 이야기’도 ‘추억’이 되어있길, 꼭 그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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